감사절
이런 시절도 있었다. 보리고개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집집마다 근근히 끼니를 떼우는 흉내만
내고 살아가고 있었다. 어른들도 항상 배가 고프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은 늘 먹는
것 때문에 껄떡거리곤 했었다. 이런 어려운 때라도 인심은 좋아서 찾아오는 손님을 굶기는
일은 별로 없었다. 물론 가족들은 굶는 한이 있어도.....
어느 집에 손님이 왔다. 이런 날이면 늘상 그러하듯이 쌀독을 다 긁어 겨우 밥 한 공기
만들었다. 상위에는 간장 한 종지, 김치 몇 가닥 그리고 밥 한 공기와 물 한 대접이 정성스럽게
놓여졌다. 부엌에서 준비하는 엄마 곁에서 아이는 밥 달라고 칭얼거린다. 그러나 손님을
대접할 것이기에 손 댈 수 없다. 엄마는 겨우 아이를 달래며 하는 말 “조금만 참아래이....
손님이 식사하시고 남기시믄 니 다 주꾸마.” 엄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시엔 손님들도
체면이랄까, 방문집의 사정을 생각한달까, 밥 한 공기가 나와도 다 먹지 않고 반쯤 먹는
둥 하다가 속이 거북하다느니, 오기 전 지난 식사에 뭘 많이 먹어서 아직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느니 등의 핑계를 대고 숟가락을 슬거머니 놓는 것이 일반이기 때문이다.
이제 단칸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대화하고 있는 손님앞에 상을 갖다 놓는다. 손님은
한 공기 뿐인 밥상을 보고 “우째 저만 주능교? 가족들은예?” 한다. “걱정말고 잡수이소.
우리들은 일찍 다 무웃능기라예.” 라고 어줍잖게 대답하고는 방문을 닫고 나온다. 손님은 그것이 겉치례인줄 알면서도 숟가락을 들기 시작한다. 한 숟갈 두 숟갈 들어가는 것을
창호지 구멍으로 보면서 아이는 침을 삼킨다. 이제나 저제나 밥상 물리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밥이 벌써 절반이나 없어졌다. 아이는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엄마의 허리춤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른다.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잠깐만 기다리라는 신호를 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손님의 밥 드시는 속도가 좀 줄어든 것 같다. 한 삼분지 일
공기 쯤 남았을까? 손님은 숟가락을 놓고 물사발을 들었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런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물사발을 든 손님은 남은 밥에다 물을
붓는 것이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하늘을 찢는 울음소리가 났다. “ 으앙 - 엄마, 밥 물에 말았데이...
아앙 -”
우리들은 요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 보다도 더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산다. 우리들의 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보다 더 풍요롭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들은 감사를 잊고 살고 있다. 옛날 어려운 시절에는 밥알 하나라도 허투루 버리면
하늘에 죄받는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농부들의 땀과, 어김없이 열매를 낸 흙, 그리고 풍요를
허락하신 하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감사할 줄 모르고
방종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참 이상하게도 감사는 어려운 시절 사람들이 더 잘 한다. 풍요로 온 몸을 휘감은 사람들은 감사의 입술이 닫히고 감사의
목이 굳어 있다. 우러러 보는 눈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