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는 날, 서러운 날




옛날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추석이란 ‘추워지는 날’이고 설은 ‘서러운 날’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명절의 의미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명절에 더욱 쓸쓸해지고 울적해 진다. 아마 남들에게는 더욱 화려해 지는 날들이 가난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 대조적으로 초라해 지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올해 설날이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히 더 ‘서러운 날’이 되는 이유가 있다. 노조파업, 한보 등의 사건으로 인해 전국의 경기가 침체되었고 그 파급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설을 맞이하여 전국적으로 전체기업의 22.2%가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였고, 부산에서는 전체 기업의 36% 가 상여금을 지급하지 못하였다 한다. 그나마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다행이다.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설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에서 교육을 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기독교 교육은 결코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든지 어두운 부분만 보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크리스챤은 즐거움이 무엇인지 안다. 또한 즐거워 할 때를 누구보다도 잘 알며 즐길 줄 안다. 명절이나 축제일은 당연히 즐거워 해야 한다. 그러나 즐거움에 의해 눈이 가리워지지는 않는다. 성숙한 크리스챤은 즐거워 해야 할 때 즐거워 하지만 항상 마음의 한 쪽으로는 그렇지 못한 이웃들을 생각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살 동안 크리스챤이 가져야 할 즐거움의 양면성이다.
교육은 어떻게 즐거움을 누릴 것인지 가르쳐 주면서 동시에 즐거움에 참여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인 이웃들을 생각하며 숙연해 할 줄 알고, 방종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곧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끝난 뒤 우리가 살게 될 하늘 나라에서는 참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그 때의 그 즐거움은 양면성을 가진 지금의 즐거움과는 다르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우리는 항상 즐거움의 양면성을 생각해야 한다.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