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에 예수님이 오시게 하자




요즘 우리들에게 성탄절이 다가옴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이들은 가브리엘 천사도, 동쪽나라에서 온 박사들도, 들에서 밤 새워 양치던 목동들도, 혹은 예배당 뾰족탑위에 걸린 ‘축 성탄’간판도 아니다.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고 가는 도로변에 늘어선 옷가게들, 겨울철이 지나기 전에 쌓여 있는 상품들을 처분하고자 세일을 하는 백화점들, 거리에, 서점에, 문구점에 등장하는 카드와 장식용품들, 그리고 번쩍이는 색등과 네온싸인으로 치장된 술집, 디스코 텍이다.
어느 해인가 크리스마스를 반팔 소매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부채질을 하면서 타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통에 익숙한 서구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성탄절에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파티를 하며 지낸다. 그때가 되면 먼 곳 타향에까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그 동안 한 해의 이야기와 정감을 가슴에 안고, 양손엔 선물꾸러미와 타지에서 키운 아이들의 손을 쥐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아마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날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릴 때,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 성탄절만 되면 동네 교회당 건물에 세워놓은 장식물들, 쓰여진 축하 문구들은 왠지 교회를 모르던 코흘리개의 마음을 설래게 했다.
국민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때에 양아버지로 부터 받은 ‘과자 종합 선물셋트’, 와이샤쓰 곽대기 같은 종이 박스를 열었을 때 나의 입과 작은 눈은 나의 마음 만큼이나 크게 벌어졌다. 비스킷, 스낵들, 사탕, 껌, 젤리, 쵸컬릿 등... ‘와 오만가지 과자가 다 들었다.’ 지금은 과자 종류가 말 그대로 오만가지가 넘지만 그 때로서는 드물었고 더구나 요술과 같은 과자상자는 처음 나온 때 였다.
초등학교 6학년 성탄절, 이제 얼마 후면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높아만 보이던 형님이 다니던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동안 한 반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내던 머스매, 가시내 들과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 아쉬운 정들을 끊어지지 않게나 하려고 어린 마음은 서투른 솜씨로 도화지에 싸인펜과 물감을 칠하고 색깔나는 속지엔 ‘하늘엔 영광, 이 땅엔 평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썼다. 어느 교회 외벽에 붙어있던 문구를 아무 뜻도 모르고 인용했던 것이다.
그러던 사이에 세월의 눈이 새록새록 쌓이듯 우리 주님의 은혜가 무딘 내 영혼에 조용히 쌓였다. 그리스도를 모르면서 그리스도 오신 날만 알던 나에게, 1982년 겨울은 돌아온 따뜻한 나의 고향, 나의 주님의 울타리 속에서 내 영혼의 가족들과 함께 맞게 된 해였다.
크리스마스에 교회보다 세상이 더 떠들썩하다고 “왜 너희들의 성탄절이 아닌데 너희들이 더 설치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주님은 세상을 위하여 오셨고 성탄은 세상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건강한 자들 보다는 병든 자들을 위해, 차라리 주님의 마음은 양 우리안에 있는 아흔아홉마리보다 어두운 계곡에서울고 있는 잃은 양에게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신자, 세인 가릴 것 없이 사회 구석 구석에 스며있는 성탄 분위기 속에, 성탄 포장지, 성탄 껍데기들만 나뒹굴고 있는 거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