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에 그리는 사랑
백지에 그리는 사랑
우리는 누구나 백지 위에 그림을 그려본 경험이 있다.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종이
위에 연필이나 붓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마음대로 그려 보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비록 훌륭한 그림 솜씨를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필을 움직여 갈 때, 그 지나간 흔적을 뚜렷이 드러내어 받쳐 주는 백지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그러나 이미 무언가가 그려져 있는 종이 위에 무엇을 그리려 한다면 그것은
재미가 없다. 있는 것을 지워 버리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위에 그린다는 것도 어렵고, 남은 여백을 찾아서 그린다 해도 그 그림은 이미 내 마음과 거리가 멀다. 나의 의도를
마음대로 그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은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종종 우리는 어린이들의 심령을 백지에 비유한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깨끗한 백지.
누가 먼저 이런 비유를 말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것이 사실인 것은 분명하다. 어린이의
심령이 백지라면 교사의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심령에 그림 그리는 것으로 비유 될까?
생각해 보라!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백지 어린이들이 가슴에 산도 그리고 하늘도
그려넣고, 사람도, 어머니도, 친구도 그려 넣는 다는 것은 귀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어린이들의 가슴에 무엇이든 그려넣어 보라. 내가 그린 것을 그대로 드러내어 줄 것이다.
이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두렵기도 한 사실이다.
우리가 백지 어린이들이 가슴속에 써 넣고 그릴 것은 다른 어느 것도 아닌 사랑이다. 우리가
한 말들, 우리가 가르친 소소한 지식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 버리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항구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매정하다 원망하거나 안타까와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의 가슴속에는 한 가지
만이 뚜렷하게 남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 우리가 가르쳐준 사랑,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쏟아 부으신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만 기억되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다
지워 버리시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백지위에 사랑을 그리는 화가다. 세상 누구보다 가장 귀한 소재를 가지고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화가들이 그려 놓은 그림처럼 당장 눈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훗날 어린이들이 자라서 어느 정도 제 놈들의 몫을 할 때 쯤, 그들의 삶의 현장속에서,
그리고 소외되고 잊혀져 버린 불쌍한 이웃들의 가슴 속에서, 또는 이름도 모를 어느나라에서 그제야
만난 자기 생명의 구원자, 자신들의 창조주로 인하여 기쁨과 감격으로 떨고 있을 이방인들의
벅찬 가슴속에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그리고 있는 똑 같은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힌 길을 밟아보는 기쁨을 누려본 사람들은 이 심정을 알 것이다.
조심조심 예쁘게 발자국을 찍으며 앞으로 나아가다 한 번씩 뒤를 돌아다 보고 하얗게 된
온 세상에 자기를 따라오고 있느 발자국을 흐믓한 미소로 바라보는 기쁨에나 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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