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나는 차를 좋아한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차마시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특별히 진하고 요란스러운 서양식의 커피보다는 은은한 향과 있을 듯 말듯한 맛을 가진 잎차가 좋다. 또 입차라도 티백에 든것보다는 그냥 잎을 썰어 말려 놓은 것을 그대로 뜨거운 물에 담구어 우러 내어 마시는 차가 훨씬 좋다. 티백에 든 것은 왠지 모를 기계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차는 맛으로 보다는 기분으로 마신다. 한 스푼에 1그램도 안되는 차잎 자체의 맛이 ‘이렇고 저렇고...’라기 보다는 차를 마실 때의 기분, 차의 의미가 중요하다. 차의 본질은 얼마 되지도 않는 차의 무게 자체 보다는 그 속에 담겨진 의미에 있다.

옛날 어른들은 차를 마실 때 예절과 법도를 소중히 여겼다. 차 마시는 것을 예사로이 보지 않고 수도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처럼 차를 마셨다 한다. 그러나 나는 차를 마시는 예법을 잘 알 만큼 귀족스럽지 못하다. 격식이나 모양은 나에게 별로 상관 없다. 단지 차 자체가 좋고 차 마시기를 좋아한다. 차를 즐기는 것과 차에 대한 애착 그것 자체가 나에게 다도이며 예법이다.

형태조차 알 수 없는 차 잎 속에는 그래도 많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다. 뿌리를 통해 빨아 올려진 지양분이 모이고 강렬한 태양 빛이 스며들고 신선한 공기와 자연의 향내가 져며 들어가 소박한 농부의 손에, 이국적인 처자들의 손에 채취된 잎들, 불에 달구어 썰이고 늘어 말려 졌다가 어떤 경로에서든 상인들의 손을 통해 나의 손에 까지 흘러들어온 차 잎들, 찻 잔에 한 스푼 쯤 넣고 더운 물을 부어 놓으면 그간 빨아 올렸던 지양분과 쪄 들었던 녹색 태양 빛, 배여있던 자연 내음을 한 껏 토해 놓고 퍼렇게 뒤 집어져 뒤로 나 자빠 앉는다. 그러면 이젠 땅이라고는 딱딱한 아스팔트와, 숨을 탁 막는 매연과, 스모그 사이로 보이는 태양빛에 찌들린 도시의 나그네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고향을 주고 휴식을 준다. 차 한잔 만 있으면 세상 일로 번잡한 신문을 펼쳐도 좋고 피곤한 전자파를 쏘아 대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도 좋다.

맛이랄것도 없지만 그래도 차를 음미하다 보면 그 향이나 맛이 은은하고 셈세하여 잎을 따던 농부의 손 내음, 풋풋한 흙 먼지 묻은 아낙네들의 손끝에서 묻어 난 땀 내까지 느껴지는 듯 하다. 차는 우리 마음을 가라 앉혀 주고 생각을 열어 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대화 중에 차가 한 잔 쯤 놓이면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 지며 운치가 더욱 돋아 오른다.

잎 차 같이 되고 싶다. 내 세울 만한 실력이나 요란하게 떠들어 댈 만한 자랑거리가 없다 할찌라도, 내 한 몸 진리의 대지에 뿌리 박고 은혜의 태양빛 아래 드러누워 마음껏 영글다가, 이 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