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성경학교
우리나라 교회는 100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했다. 그러한 발전의 배후에는 몇가지
요인들이 있다. 미국을 통하여 들어온 청교도적이고 보수적인 신앙,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새벽기도회, 삼일 기도회, 철야 기도회, 철저한 주일성수 정신들, 우리나라 역사가운데에
있었던 고난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주일 학교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한국교회에서 중추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주역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교회 초창기 주일학교 세대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당시에는 그저 동양의 가난한 나라의 새까맣게 그을린 시골아이들에 불과했지만 주일학교 교육을 통하여 신학문과
신신앙의 물을 먹고 자라나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주일학교 교육의 발상지는 영국이다. 영국이 한창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있을때에 그들은
어린이 주일 학교 교육을 통하여 산업화에 의하여 부실해질 염려가 있는 어린이들의 신앙교육,
인격교육에 힘썼다. 그 당시에 자라난 어린이들은 영국교회의 신자비율을 95%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 그런데 190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영국교회의 신자수는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현재 약 18%만이 겨우 교회에 정규적으로 출석한다. 그나마 지금 출석하고
있는 인원들의 연령층을 보면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들은 그래도 과거 영국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이 살아 있을 때에 주일학교에 출석하던 어린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주일학교
교육의 열정이 줄어들면서 신실한 성도들을 산출해내는 산실이 부실하게 되자 현재의 교회는
텅 빈 건물로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나라와 영국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주일학교의 모습은 곧 한 세대 후의 그 나라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내일의 모습은 현재 주일학교의 모습을 반영할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 주일학교 교육의 정점은 특별히 해마다 열리는 여름성경학교였다. 여름성경학교는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해마다 꿈과 희망과 설레임을 안겨 주었다. 이때는 기존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 교회에 다니지 안던 어린이들도 은근히 기다려
지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날들은 당시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사정이 좋지 않던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큰 어린이문화의 축제기간이었던 것이다. 시골 도시 할 것없이 여름성경학교 시즌이 되면
모두 들떠 있었다. 동네 방네 곳곳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는 “여름 성경학교 즐거워 정말로 즐거워”라는 소리다.
필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어릴 때 여름 성경학교에 나가본
경험은 있다. 모르긴 해도 그때에 불렀던 찬송 한 두마디 쯤은 성경학교 이후 교회를 다니지
않던 필자의 가슴속에도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이 노래들은 나중에 필자가 교회에 나오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고향의 노래로 가슴속에서 되살아 났다.
필자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 나라 어린이들은 한 번씩 이상은 여름성경학교에 나가 보았다.
전도를 할 때면 자주 듣는 것이 바로 자기도 한 때 여름성경학교에 다녀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들은 그들에게 교회와 복음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데에 상당히
좋은 접촉점이 된다. 그렇다. 한국 사람치고 여름 성경학교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북조선’ 출신이 아닌 다음에는. 그러나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후에는
이러한 말들을 듣기 어려운 시대가 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벌써 여름 성경학교 무용론이 대두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여름성경학교를 무가치하게 여기기 보다는
시대에 맞게 성경학교의 형식을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일반 사회단체들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 교육 기관들도 캠프라는 이름으로 여름을
이용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조차도 여름성경학교식의 교육 방식을 차용하고 있을
정도로 여름교육 효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시작한 이 귀한 교육을
내 팽기칠 수가 있단말인가? 여름성경학교는 뭐라고해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교회 교육을
위하여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1년중 가장 큰 잔치를 앞두고 있다. 이 시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지역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들이 지금 그것을 듣고 즉시 반응하든
혹은 그들의 반응이 현재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누가 아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