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래




우리나라의 노래는 대부분 한에 찌들린 노래이다. 우리나라 근대 대중가요의 대명사인 트롯트 가요의 가사들을 보면 대부분 떠나가고 헤어지고 잘리고 잃고 후회하고 안타까와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스러운 생활 환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비단 대중가요 뿐만이 아니다. 어린이들이 부르던 근대 동요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하얀 눈위의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 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의 구두 발자국" 눈위에 찍혀있는 구두 발자국을 보고도 자연스럽게 '떠나갔나?'이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의 시절은 분명히 요즘과 같은 즐겁고 기쁜 일이 많은 세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예수 믿는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새벽기도회 간다고 찍어놓은 것은 아닌 듯 하다. "누가누가 새벽길 걸어갔나?"가 아니라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이다. 말하자면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길에 도망치듯 눈 덮인 길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 밤 잠 없는 철 모르는 개는 주인의 뒤를 따라가고, 당시로서는 그렇게 드물지 않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노래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한의 노래라고 일컫는다.
그런 가운데 근세에 가장 즐거운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노래중에 하나는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 이다. 이 노래는 의례히 동네의 잔치자리, 혹은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한 잔 들어가면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노래다. 단조로우면서 변화가 있는 가락이나 4.4조를 사용한 박자 등이 사람을 흥에 겹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 노래는 진심으로 흥에 겨워서라기 보다는 다분히 현실체념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 보아도 않되는 현실속에서 고통스럽게 살 필요 없이 그저 즐기면서 살자는 것이다.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라는 가사도 결국은 진정 즐거움에서 터져나오는 감탄어들은 분명히 아니다. 말하자면 현실을 잊어버린데서 오는 비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억지로 흥을 돋우기 위한, 말 그대로 여흥구(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구절)다. 우리나라의 즐거운 노래란 결국 사람과 현실로부터 상처받은 사람이 현실을 팽개쳐 버리고 쾌락주의에 빠지자는 퇘폐성 의도를 가진 것이다.
그런 우리민족에게 희망을 심어준 노래들이 들어 왔다. 찌들린 한이 아니라 젖어 드는 행복감, 할 수 없음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내용을 가진 노래 들이 들어 왔다. 즐거우면서도 결코 쾌락주의에 도착된 것이 아닌 건전한 노래, 한 바탕 한스럽게 부르다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잊지 않고 부를 노래들, 사람들과 삶에 상처받아 솟구치는 눈물의 노래가 아니라 치유와 감사에 겨워서 흐르는 뜨거운 감격의 노래가 들어 왔다.
인간의 삶에 슬픔이 있고 애환이 있는 원인은 결국은 인류의 범죄에 있다. 어떻게 해보아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죄악이 모든종류의 불행을 가져온 것이다. 이 불행은 결국은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완성(?)될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란 슬픔의 노래(혹은 한의 노래)와 쾌락의 노래 두 종류로 요약된다.
그런 인류에게 들어온 새 노래들은 과히 참 기쁨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노래들, 생명이 넘치는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의 기원을 알려면 우리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가야 된다. 이 노래의 배후에는 인류를 위한 한 의인이 죽음이 있었다. 기쁨과 영광을 스스로 버리시고 슬픔과 고통을 친히 지심으로 우리에게 참 기쁨의 새노래, 영원토록 생명을 주는 노래들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이 노래들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노래들을 길이 불러 그분의 덕을 기리고 참 노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