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나는 글의 형태 중에서 수필을 좋아한다. 수필은 시나 소설처럼 일정한 형식에 매일 필요가 없다. 또 특별히 깊은 내용을 담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내용에 있어서 소위 ‘신변잡기’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형식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자유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 맞다. 그래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시절 한 때 책께나 읽을 때엔 다른 어떤 책들보다 당시에 필력이 있던 어른들의 수필집들을 제법 여러 편 구해다 맛 나게 탐독하곤 했다.
수필(隨筆)이란 말 그대로 옮기면 ‘붓이 가는대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이제 이 시대에서는 새로이 재고 될 단어이다. 굳이 그 이유를 말하자면 요즘에는 붓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은 요즘은 진기한 일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요즘은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사람-즉, 붓으로 글을 쓸 만큼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붓으로 글을 쓰는 ‘수필’을 한다. 옛날 어른들은 글을 쓰자면 붓과 먹, 벼루와 연적, 그리고 화선지를 준비해야 했다. 글을 쓰는 작업은 벼루에 연적으로 물을 떨어뜨리고 먹을 갈면서 먼저 마음을 가다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한참 갈다가 먹물이 어느 정도의 점도를 지니게 될 때 쯤이면 글상도 먹물의 점도만큼이나 무르익는다. 그제서야 생각을 붓에 담아 화선지에 실어 나르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붓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 내가 준비하는 것은 전원을 공급해 줄 콘센트를 찾고, 컴퓨터 시동 스위치를 눌러 내가 글을 쓸 여백을 제공해 줄 프로그램을 화면상에 띄어 올리는 것이다. 더 편리한 것은 요즘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가지게 되어서 언제 어디서든지 글상이 떠오르기만 하면 글을 쓸 수 있다. 그렇게 하다보니 때론 생각이 익지 못한 글이 나오기 쉽다. 그러나 순간에 번쩍이는 착상을 놓치지 않고 잡을 수가 있다. 단지 거친 착상을 화면에 옮겨 달아나지 않도록 결박해 두고 시간과 기도와 묵상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컴퓨터 여백은 한 번 쓰면 더 이상 여백을 제공해 주지 않는 종이와 달라서 내가 언제든지 써 놓은 글을 수정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이디어만 잡아두고 물이 없어도 좋고 먹이 없어도 좋다. 단지 컴퓨터의 밧데리 점검만 잘 해주면 된다. 붓으로 쓰지 않고 콤퓨터로 쓴다는 의미에서 더 이상 수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적당한 말을 붙일 수가 없다. 수컴 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종종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옛날에 글을 쓰던 어른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작업을 해야 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그의 일생동안 교회개혁작업과 함께 엄청나게 방대한 분량의 글을 썼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로마교회의 부패와 비성경성을 드러낸 95개조 반박문을 비롯하여 성경주석들, 수십편에 달하는 논문들, 그 외에 그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크고 작은 글들은 지금 현대의 여러 기계의 도움을 받고서 사람들이 쓰려고 해도 써 내기 어려울 정도로 분량이 많다. 그런데 만일 그의 시대에 나와 같은 휴대용 컴퓨터가 있었다면 그의 글의 분량은 더 엄청나게 늘어 났을 것이며 그는 글 쓰고 출판하는데 소비한 시간을 더 많이 다른 일을 위해 할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지혜를 주셨고 인간은 그 지혜를 도구로 삼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연구하고 지극히 일부분이지만 자연과 우주의 법칙을 알아내어 왔다. 자연과 우주에 관한 지식들은 축척되어 시대가 지나면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시대적인 발전속도를 가속화시켰다. 이는 때때로 많은 악영향을 낳았지만 또한 인간의 공영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컴퓨터는 이 세대 인간 기술과 과학의 집결체다. 한 때 비성경적인 종말론을 외치던 사람들이 컴퓨터를 666이니 하고 사람들을 미혹했다. 그러나 컴퓨터 자체가 666이 될 수 없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무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를 온갖 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할 악한 무리들이 666이지 그것을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면 지극히 선한 열매를 나태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몇십년 전에는 성경을 한 부족언어로 번역하는 데는 수 십년이 걸렸는데 요즘에는 몇 년만에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것도 컴퓨터의 덕택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주신 지혜와 기술의 산물들이 악한 무리들에 의해 악용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우리는 이 세대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혜의 산물들을 어떻게 선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곧 창1:27의 문화명령에 부합되는 일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빨리 움직인다. 이런 세상중에서 신속하게 대처하면서 사람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미치며 살기 위해서는 시대적 이기들(이로운 기기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 맡은 분야가 무엇이든-그것이 사업이든, 학업이든, 선교든 신속하고 빠른 판단과 결과들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나는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위해 나에게는 힘에 부치는 엄청난 결단-재정적인 결단-을 한 것이다. 그것이 곧 이 시대적 기술의 결정체 컴퓨터다.
나는 이 컴퓨터를 구하기 위해 6개월 이상을 기도했다. 물론 앞으로도 1년간은 이 컴퓨터를 구입한 이유 때문에 고난-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말할 수없는 감사를 드린다.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일에 날개를 달아 주신것이다. 또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 특별히 앞으로 나의 목회와 선교의 일에 아름답게 쓰여 지도록 기도한다. 나의 컴퓨터의 이름은 It’s for You! (주님, 당신의 것입니다!)이다. 내 몸이, 내 생명이, 내 재능이 주님의 것인 것 처럼 �